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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2012.6.12] 고깃배만 타던 아이, 스머프 마을에 떨어진 사연


    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

    [동행취재] 산골학교 아이들이 일본 규슈로 떠난 조금 특별한 2박 3일간의 수학여행


    [오마이뉴스 김혜란 기자]


    "아침에 못 일어날까 봐 어젯밤에 한숨도 안 잤어요."


    비행기를 처음 탄다는 선주(13)는 수줍게 웃었다. 춘천 남산초등학교 서천분교에 다니는 선주는 학교에서 '왕언니'로 통한다. 전교생이 18명이지만 6학년은 선주 한 명뿐이다. 또래친구들과 뛰어 놀게 해주고 싶다는 담임 선생님의 편지로 선주는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여행박사는 지난 4월, 문화적 혜택이 적은 산골학교 아이들에게 무료 해외여행을 보내주기 위해 6학년 전교생이 5명 이하인 오지학교를 대상으로 사연편지를 받았다. 아이들이 직접 편지를 쓰기도 하고 선생님이 아이들 모르게 신청해주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이렇게 선정된 초등학교 6학년생 20명과 담임선생님 9명이 2박 3일간의 규슈 여행을 떠났다.
     

    아침 8시, 전국 각지 산골학교에서 온 20명의 아이들이 모인 인천국제공항. 후쿠오카행 오전 10시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직은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새로운 친구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떨려서 어젯밤에 잠을 못 잤다"는 아이들은 여권을 손에 꼭 쥐었다.
     

    섬마을 선생님이 부친 편지


    전북 군산시 비안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진수(13·가명)는 여객선도 안 들어와 고깃배를 타고 다녀야 하는 비안도에서 할머니와 여동생 두 명과 함께 산다. 전교생이 4명인 비안도 초등학교에서 6학년은 진수 혼자뿐이다.
     

    진수의 담임 황준영 선생님은 "아내와 두 아이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했다. 군산 육지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지만 주말에만 가족과 만난다. 학교가 있는 섬과 육지를 오가려면 개인 배를 빌려 타야 해서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월요일 아침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와 학교 관사에서 생활하다가 주말에 집으로 돌아간다.
     

    섬마을 아이 진수는 학교에 가는 게 제일 좋단다. 선생님이 겨울에는 추우니까 일찍 오지 말라고 해도 오전 8시가 되면 학교에 온다. 할머니가 바지락 캐러 일찍 나가시고 집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진수는 여섯 살, 4학년인 두 여동생과 함께 한 교실에서 공부한다. 수업이 끝나면 매일 오후 9시까지 방과후 교실에서 통기타, 한문, 컴퓨터, 탁구 등을 배운다. 저녁밥도 선생님이 직접 해준다.
     

    선생님은 선발이 안 되었을 때 실망할 진수를 염려하여 진수 모르게 사연 편지를 써서 신청했다.
     

    "섬마을 아이들에게 가장 부족한 게 사회성이거든요. 다른 학교 학생들이랑 어울리다 보면 사회성도 길러지고 새로운 문화체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신청했죠".

    선생님은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떠난다는 소식에 진수가 너무 놀라고 기뻐했다"고 전했다.
     

    황 선생님은 "현장체험학습 많이 다니면 다닐수록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한 달에 한 번 이상씩 섬 밖으로 나간다. 오지학교 학생들을 초청하는 체험행사를 찾아봐서 신청하기도 하고, 학교 자체에서 기획하기도 한다. 올해는 전남 고흥, 지난 주에 임실 문화체험을 다녀왔다. 다음달에는 서울 3박4일 여행 계획이 있다"고 했다.
     

    선생님과 단체로 옷을 맞춰 입고 온 광활초 아이들. 29일, 고쿠라성 정원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
    ⓒ 김혜란  

     

     

    전북 김제 광활초에 다니는 동진, 태현, 대규는 선생님과 초록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왔다. 다문화가정 어린이인 동진이와 태현이, 할머니 손에 크는 대규는 "선생님이 우리들 놀러 다니게 해주고 우리를 위해서 희생해 주세요"라며 "또 사진을 잘 찍으세요, 한 달에 한 번 좋은 날이 있어요"라고 선생님 자랑을 늘어놓았다.
     

    담임인 홍혜원 선생님은 "부모님들이 바쁘시고, 할머니와 사는 아이도 있기 때문에 챙겨주기 힘드실 것 같아 단체로 옷을 맞추었다"며 "'한 달에 한 번은 재미있는 걸 하자'고 아이들과 약속했다. 휴일에 아이들과 야구장도 가고, 영화도 보러 다닌다"고 했다.
     

    신나게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 아이들

     

    지난 30일, 아소산 나카다케 분화구를 배경으로 점핑 사진을 찍는 아이들
    ⓒ 김혜란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탄지 1시간 10분만에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생애 첫 해외 수학여행은 키타큐슈 시립자연사·역사박물관 관람으로 시작됐다. 박물관은 지구탄생에서 현재에 이르는 자연과 생명의 진화, 키타큐슈지역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열심히 구경하던 진수의 눈이 반짝 빛났다. "못 보던 것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아요"라며 수줍게 말했다. 담임선생님은 "섬에서만 지내는 아이라 일반 애들보다 보는 걸 두세 배 더 신기해 한다"며 "원래 말이 없는 애가 아닌데 얼떨떨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오후 3시, 약 30분간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고쿠라성 정원. 이곳에서 일본식 전통녹차를 마셨다. 코쿠라역 옆에 위치한 호텔에 짐을 풀고 근처 탕카시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의 일정은 끝이 났다.
     

    둘째 날 첫 여행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칼데라 화산으로 유명한 아소산. 남북 1km, 동서 400m, 깊이 약 150m에 이르는 나카다케 분화구에는 희뿌연 유황 연기가 증기처럼 피어 오르고 바닥에는 초록빛 마그마가 부글부글 끓는다.
     

    아소팜랜드 내 겐끼노모리를 체험중인 아이들
    ⓒ 김혜란  

     

     

    오후 1시 반경, 화산재로 덮인 아소산 풍경을 보며 약 30분을 걸어 내려와 다시 버스를 타고 아소팜랜드로 향했다. 둥근 돔모양으로 버섯 집처럼 생긴 숙소가 모여있어 스머프 마을이라 불리는 아소팜 랜드는 숙박, 체험시설을 함께할 수 있는 15만 평 규모의 테마리조트다. 건강의 숲이란 뜻의 '겐끼노모리'는 총 12000평의 숲 속에 미로, 장애물 달리기 등 다양한 놀이 코스가 있는 체험공간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마음껏 뛰어 놀았다.
     

    여기저기서 "아이고 못살아", "힘들어요"하면서도 중간에 포기하지는 않았다.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고 온몸은 땀 범벅이 되어도 기운이 펄펄 살았다. 함께 구르고 뛰고 노는 동안 어느새 하나가 되었다. 서로 별명을 부르기도 하고 손을 잡고 다녔다. 선생님들은 "어제 이걸 했어야 했다"며 "같이 뛰어 놀면서 서로 많이 친해진 것 같다"고 했다.
     

    선생님의 눈에는 아이들 노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다. 제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예쁜 장소가 나오면 아이들을 불러 세우고 어김없이 카메라를 들었다. 광활초 홍혜원 선생님은 "졸업앨범을 직접 만들어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동행한 가이드는 "선생님들 열성이 대단하다"며 "기자단이 따로 없다"고 했다. 뛰노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동영상을, 때로는 설정 샷을, 언제 어디서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면 자동으로 웃으며 손으로 브이(V)자를 그렸다. 매순간,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남기고 싶은 선생님의 애틋한 사랑과 열정이 느껴졌다.
     

    30일 저녁, 학교에서 따로 연습해 온 노래를 처음 만난 친구들과 함께 불렀다. 비록 불협화음이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 김혜란  

     

     

    오후 7시, 저녁 식사를 마친 아이들과 선생님이 연회장에 모였다. 합창을 하기 위해서다. 여행박사 측이 '해피트래블'이라는 노래를 미리 보냈고, 각자 학교에서 연습해왔다. 학생 수가 적어 합창 한 번 같이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처음으로 한 목소리를 내었다.
     

    "혼자 있는 이 세상 빛이 없나 믿나요. 기댈 곳 없어 두 뺨 위엔 눈물만. 힘든 발걸음 이젠 손을 내밀어 함께 하얀 꿈을 꾸어요."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악보를 받자마자 신나서 노래를 연습했다"고 귀띔해줬다.
     

    우리 학교가 최고야, 선생님 사랑해요


    아소팜랜드 내 온천에서 함께 목욕을 하고 그새 많이 친해진 아이들은 4인실 숙소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같은 방을 쓰게 된 강원도 태백 미동초 희경이와 채은이, 충남 홍성군 장곡초 반계분교 유진이와 초은이는 서로 "우리 선생님이 최고"라고 했다. 희경이와 채은이는 첫 부임한 스물일곱 잘생긴 총각선생님이 담임이다.
     

    옆에 있던 유진이와 초은이는 "하나도 안 부러워요. 우리 선생님은요. 식물이랑 동물이랑 자연에 대해 많이 알려주세요. 물어보면 술술술 가르쳐 주세요"라고 했다. 아이들은 숙소에 비치된 유카타로 갈아입고 모여 앉았다. "오늘 밤 밤새도록 얘기할 것"이라며 즐거워했다.
     

    유카타를 입고 즐거워하는 아이들
    ⓒ 김혜란  

     

     

    학교에 친구들이 많이 없어 외롭지는 않을까? 나홀로 6학년인 진수도, 반 친구가 딱 셋뿐인 초은이도 "서울학교는 왕따도 있을 것 같다. 우리학교가 훨씬 좋다"고 했다.
     

    마지막 날 첫 일정은 후쿠호카현에 위치한 다자이후텐만구에 들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아소산랜드에서 다자이후텐만구까지는 차로 약 세 시간이 걸린다. 버스로 이동하는 중에 한바탕 장기자랑이 벌어졌다.
     

    "모두가 하나야. 왕따 없는 우리학교. 비안도가 최고야" 진수는 '독도는 우리땅'을 개사해서 노래를 불렀다.
     

    "우리 선생님은 꽃처럼 아름다우시고 배추처럼 우아하십니다. 우리가 일본에 것도 선생님을 잘 만난 덕분입니다."

    홍천 화계초의 정현, 휘강, 혜영이는 수학여행을 오기 전 미리 A4용지 한 장 가득 학교와 선생님 소개를 준비해왔다. 세 아이가 돌아가며 또박또박 읽었다.
     

    "우리학교에 토끼장은 아주 넓습니다. 귀여운 토끼들이 지금은 많이 자라서 딸, 아들을 많이 낳았는데 정말 귀엽습니다. 연못에는 물고기도 살고 물레방아도 있습니다. 우리가 정성껏 상추랑 당근, 배추도 키우고 있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노래를 듣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다자이후텐만구는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시는 신사이다. 신사 입구 앞에 세워진 소 동상의 뿔을 만지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 너도나도 뿔을 만졌다. 신사를 나오면서 아이들은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두 손 모아 빌었다. 캐널시티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모모치해변에서의 보물찾기를 마지막으로 수학여행의 일정이 모두 끝이 났다.
     

    아이들은 공항에서 "정 많이 들었어, 잘가" 하면서 인사를 나눴다. "온천이 제일 좋았어", "라면이 제일 맛있더라"라며 함께한 2박 3일간의 추억을 공유했다. 선생님들도 서로 메일주소와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학교 투어 한번 하자"고 웃었다.
     

    장곡초 반계분교 민양식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된 것 같다"며 "여행박사 측에서 자기의 월급의 일부분을 기부하면서 소외 받는 사람들에게 쓰이도록 배려한 부분들이 감동적이다. 이번에 받은 사랑을 계기로 우리 아이들도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행박사는 매달 200명의 직원이 월급의 1%를 기부하고 회사는 직원들이 내놓은 금액을 똑같이 기부하여 소외계층에 여행을 보내주는 사회공헌 사업 '트래블스토리 두드림'을 시행하고 있다. 이번 수학여행에는 휴가를 반납한 여행박사 직원 4명과 가이드가 동행했다.
     

    심원보 홍보팀장은 "자신의 월급 1%를 사회에 기부하는 여행박사 직원들처럼 아이들이 나눔과 배려를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번 여행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지난 30일, 아소팜랜드에서 찍은 단체사진
    ⓒ 김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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