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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2012.4.28] 24명이 일본 규슈에서 벌이는 <런닝맨>

    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


    [동행 취재] 새터민·장애인 대학생이 함께 떠난 2박 3일 일본 여행

     
    [오마이뉴스 박혜경 기자]

     

    "너 이름이 뭐라고?"


    "장대현이요."


    "자앙…대애…현"


    새벽까지 비가 내린 23일 오전 8시 인천국제공항. 자욱이 낀 안개 때문에 노란 활주로도 잘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날씨에 비행기가 결항되는 건 아닌지 걱정될 법도 하지만, 스마트폰을 손에 쥔 김민석(34)씨는 장대현(23, 가명)씨 '전화번호 따기'에 여념이 없다. 이날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둘은 형제처럼 친근하다.
     

    여행박사의 사회공헌 사업인 '트래블스토리 두드림, 여행의 날개'에 선정된 사랑의 복지관 산하 사랑기능대학 지적·자폐성장애 대학생 12명과 사랑의 교회 북한사랑선교부 새터민 대학생 12명은 23~25일, 2박 3일 일정으로 규슈지역 여행을 떠났다. 새터민과 장애인 대학생 2명이 함께 짝을 이루는 이번 여행에서 민석씨와 대현씨는 3일 동안 서로를 챙기는 '짝꿍'이 됐다.
     

    "해외여행은 처음인데 좋다"며 수줍게 웃는 대현씨는 2010년 혼자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들어왔다. 대현씨가 태어나고 자란 백두산 아래 양강도 혜산시에는 아직도 대현씨의 부모님과 여동생이 살고 있다. 한편 그의 짝인 민석씨는 지적장애 3급으로 10~11살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누구에게나 먼저 이름을 물어볼 정도로 '붙임성' 만큼은 누구도 따를 이가 없다.
     

    통성명이 끝난 이들은 여행이 즐거운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나머지 22명의 재잘거림도 주변을 가득 채웠다. 이번 여행에 직접 사연을 응모한 허경 사랑의 복지관 기획홍보팀 팀장은 "여행이 결정된 뒤 모두 매우 설레어 했다"고 귀띔해줬다.
     

    24명이 규슈에서 벌이는 <런닝맨>... 여기저기서 "꺄아~"



    하우스텐보스에서 규슈판 <런닝맨> 경기인 '사랑맨'을 수행하고 있는 1조의 뒷모습.
    ⓒ 박혜경  

     

    셔틀 트레인을 타고 비행기에 오른 지 1시간 20분 만에 도착한 일본 후쿠오카 공항. 한국과 달리 화창한 날씨에 다들 윗옷을 벗었다.
     

    이들의 첫 여행지는 나가사키현 사세보에 위치한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 "규슈에 3일만 있다 가면 1년간 눈이 편해진다"는 가이드의 말처럼 후쿠오카 공항에서 하우스텐보스까지 가는 길에는 히노끼라 불리는 편백나무가 가득했다.
     

    후쿠오카 공항을 나와 1시간 45분가량 달리면 도착하는 하우스텐보스는 네덜란드어로 '숲속의 집'이란 뜻의 테마 리조트 공원으로 1992년 처음 문을 열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모습을 재현해 '일본 속의 네덜란드'라고 불리는 이곳에서 24명의 대학생들은 6개의 조로 나뉘어 '미션'을 수행한다.
     

    <런닝맨> 형식을 본따 일명 '사랑맨'이라 이름 붙여진 이번 미션은 주어진 문제를 가장 먼저 풀거나 다른 팀원 등에 붙은 이름표를 많이 획득한 팀이 이기는 경기이다. 시작 전부터 실제 <런닝맨> 못지않은 긴장감이 흘렀다. 새터민 대학생 한홍화(25), 황예빈(34)씨와 사랑기능대학에 소속된 이종훈(35), 왕지웅(22)씨가 속한 1조는 서로 '누구 이름표를 먼저 떼야 한다'며 작전 짜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랑맨' 미션 중 하나인 일본인 학생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1조의 모습.
    ⓒ 박혜경  

     

     

    "오빠, 오빠 것을 먼저 지켜야 돼요."


    인천공항에서부터 자신의 짝꿍인 종훈씨를 "오빠"라 부르며 잘 챙기던 홍화씨는 이동을 하면서도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다. "꼭 1등을 해야 한다"면서도 수시로 거울을 보고 예쁜 장소가 나올 때마다 사진을 찍는 모습은 영락없는 20대다. 오후 5시, 드디어 미션을 담은 종이가 건네졌고, 홍화씨와 예빈씨는 아예 땅바닥에 주저앉아 암호 같은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1조 조원들이 하우스텐보스로 수학여행 온 일본 학생들을 붙잡고 손짓발짓하며 물어 마침내 도착한 곳은 마우리츠 광장. "꺄아." 비명소리와 함께 각 조 간에 격렬한 공격과 수비가 이어졌고 여기저기서 이름표를 제거당한 '탈락자'가 속출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준비한 사랑의 복지관 선생님들도 예상치 못한 접전에 경기는 아쉽게도 우열을 가리지 못한 채 끝이 났다.
     

    세 번째 만에 성공한 '탈북'... "경쟁 사회인 남한, 너무 힘들어요"



    구주쿠시마 국립공원 유람선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김민석(34, 왼쪽)씨와 최은혜(30, 오른쪽)씨.
    ⓒ 박혜경  

     

     

    "저 물 봐라, 다이빙하고 싶지 않냐?"


    "캬, 이게 바로 지상낙원이지."


    둘째 날 일정은 구주쿠시마 국립공원 유람선 관광으로 시작됐다. 오전 11시 이들을 태운 펄퀸(Pearl Queen)호가 출발하자마자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일본 나가사키현 히라도시와 사세보시 사이에 떠 있는 208개가량의 섬들이 진녹색 바닷물과 어울려 장관을 이뤘기 때문.
     

    2007년 11월 탈북한 뒤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있는 최은혜(30)씨 입에서도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다. 그녀는 배에서 흘러나오는 한국어로 된 방송이 "신기하다"면서 연신 핸드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전날 찾은 하우스텐보스에 반해 이동 중인 내내 "난 하우스텐보스가 좋은데…"를 중얼거리던 사랑기능대학 출신 장애인 바리스타 임아영(23)씨도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50분의 아쉬운 항해가 끝난 뒤 이어진 점심시간. 선착장 앞 풀밭에서는 때아닌 '캠퍼스 분위기'가 연출됐다. 햄버거와 샌드위치, 콜라 등을 산 6조 팀원들이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연예인 중에 누구 좋아하나?"


    "나는 이승기가 제일 좋더라."


    "신민아가 시원시원하게 생긴 게 좋던데."


    새터민 대학생인 김은지(21, 가명)씨와 강지석(23, 가명)씨는 여느 또래와 다르지 않게 연예인 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은지씨는 "연예인을 많이 좋아하는 건 아니"라면서도 "배용준 미소가 정말 환상적"이라고 추켜세웠다.
     

    은지씨의 혈액형을 물은 지석씨는 "나는 A형인데, O형인 너한테 상처받겠다"면서 '혈액형 점술'을 술술 풀어놨다. 아빠가 "미국이랑 일본은 꼭 가봐야 한다"며 이번 여행 소식에 기뻐했다고 전한 그는 남한과 북한에 있는 부모님이 모두 네 분이다. 탈북한 엄마와 북에 남아있는 아빠가 각각 따로 가정을 꾸렸기 때문. "모두 좋은 분"이라며 의젓하게 미소짓는 지석씨이지만 남한에 온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아서 일까, 세 번째 시도 끝에 밟은 남한땅에서의 생활이 아직은 너무 어렵다.
     

    "북에서는 다 같이 하는 게 많단 말이에요. 근데 여기는 내 일 아니면 상관 안 하잖아요. 옆집 사람 얼굴도 모르고… 경쟁 사회니까 또 힘들죠. 남보다 잘해야 된다, 떨어지면 안 된다. 그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다다미 깔린 방에서 펼쳐진 '장기자랑'... "일본여행, 고맙습니다~"


    조별 장기자랑에서 1등을 차지한 1조. 제일 오른쪽에 있는 료칸 직원이 이들에게 춤을 가르쳐줬다.
    ⓒ 박혜경  

     

    문화적 차이 말고 새터민 대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어려움은 '영어'였다. 2006년 탈북해 대학에서 상담과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있는 예빈씨는 "영어 스펠링 읽을 정도의 수준으로 대학에 들어갔다"면서 "토익에 매달 돈을 붓고 있는데 성적이 잘 안 나온다"고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한편 탈북한 지 4년이 넘은 은혜씨는 북에서 아역배우 하던 시절 겪었던 에피소드를 털어놓기도 했다.
     

    "여기 남한에서는 길거리에서 뭐 먹고 있는데 예쁘면 캐스팅 하고 그러잖아요. 근데 북은 달라요. 저 같은 경우 8살 방학 때 고모 집에 놀러 갔다가 사촌 오빠랑 평양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누가 뒤에서 잡아채 가더란 말이에요. 1년간 집에도 못 가고 정신교육 받았어요. 알고 보니까 영화 찍으려고 그렇게 했던 거죠. 그게 바로 '길거리 캐스팅'인데 납치지 뭐예요. 집에서는 애가 없어졌으니까 발칵 뒤집어졌죠."

    일본어로 쯔쯔지(つつじ)라 불리는 철쭉이 가득한 175년 된 정원을 둘러본 일행들은 숙소로 향했다. 이들이 짐을 푼 곳은 '즐거운 들판'이란 뜻의 우레시노시에 있는 일본 전통 료칸. 녹차로 유명한 이 지역에 있는 '우레시노 온천'은 목욕을 하면 피부가 고와지고 미인이 된다 하여 히노카미 온천, 기츠레가 온천과 함께 일명 '일본 3대 미인탕'으로 손꼽힌다.
     

    오후 7시 30분. 2박 3일 일정의 마지막 밤인 이날 조별 장기자랑이 펼쳐졌다. 베이지색 다다미가 깔린 30평가량 되는 방에 하늘색, 연보라, 연분홍 꽃무늬의 유카타를 입은 일행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해외여행 꿈도 못 꿔 허무했는데, 일본여행 웬 떡이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개그콘서트> '감사합니다' 패러디부터 료칸 일본인 직원을 섭외해 선보인 일본 노래와 춤, 바이올린 연주, 올챙이송까지 갖가지 공연들이 펼쳐졌다. 올챙이춤을 춘 뒤 서둘러 자리에 들어온 사랑기능대학 소속 김진성(26)씨는 "민망하다"면서도 얼굴 가득 미소를 띠었다. 치열한 경쟁 끝에 1등의 영광은 말이 통하지 않은 일본인 직원에게 춤을 배워 선보인 1조에게 돌아갔다. 일행들은 한자리에 모여 오늘까지 찍은 사진을 나눠보며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에 또 만나요"...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 온 일본

    일본 학생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왕지웅(22, 왼쪽)씨와 황예빈(34, 오른쪽)씨.
    ⓒ 박혜경  

     

    "아, 아쉽다. 다음주에 한국 가면 안 돼요?"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 사가현을 출발한 일행들은 조금씩 내리는 비를 뚫고 규슈섬의 북쪽 후쿠오카로 향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가이드의 위로에도 24명의 학생들은 끝나가는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학생들의 마음과는 달리 버스는 곧 후쿠오카현에 위치한 다자이후덴만구(太宰府天?宮)에 도착했다. 학문의 신인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시는 신사인 만큼 일본인들은 중요한 시험을 보기 3개월 전부터 이곳을 찾아 기도를 올리곤 한다.
     

    "토익시험 잘 봐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인사동을 연상시키는 길을 따라 도착한 신사 입구 앞에 세워진 소 동상의 얼굴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말에 예빈씨는 반들반들해진 동상을 쓰다듬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신사에 이어 방문한 곳은 일본 해변에 위치한 타워 중 가장 높은(234m) 후쿠오카 타워. 이곳에서의 관람과 후쿠오카 시내 쇼핑을 마지막으로 2박 3일간의 규슈 여행은 모두 끝이 났다.
     

    새터민 대학생 최은혜씨는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 나한테도 있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이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 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랑의 기능대학 소속 이종훈씨 역시 "일본에 처음 와서 비행기 멀미를 했지만,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겠다"며 "다음에 또 만났으면 좋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허경 사랑의 복지관 기획홍보팀 팀장은 "새터민과 장애인 모두 생각하는 것이 순수해서 그런지 서로 배려하고 잘 어울린 것 같다"며 "기대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여행박사는 매달 200명의 직원들이 월급의 1%를 기부금으로 내놓고, 회사가 직원들이 내놓은 똑같은 금액을 기부하는 매칭 그랜트(matching grant)를 통해 사회공헌 사업 '트래블 스토리'를 시행하고 있다. 다가오는 5월에는 6학년생 5명 이하인 산골 초등학교의 학생들이 무료 해외 수학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4월 23~25일 2박3일 규슈 여행 마지막날 료칸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 박혜경



     
    2박 3일 동안 '짝꿍'이 된 김민석(34, 왼쪽)씨와 장대현(23, 가명, 오른쪽)씨
    ⓒ 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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